비유에 나오는 형제를 통해 예수님은 사람들이 행복과 만족을 찾으려 한느 두 가지 기본적인 길을 보여 주신다. 하나는 도덕적 순응의 길이고, 또 하나는 자아 발견의 길이다.
둘 다 인생관에 색깔을 입히는 렌즈이자 세계관을 형성하는 틀이다. 둘다 자신의 의미와 가치를 찾는 길이고, 세상의 악을 해결하는 길이며, 옳고 그름을 구별하는 길이다.
도덕적 순응의 길을 대변하는 비유 속의 형
예수님 시대의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이 하나님께 선택받은 백성이로되 그 신분을 잃지 않고 그분의 복과 최종 구원을 받으려면 성경에 엄격히 순종하는 수밖에 없다고 믿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하나님의 뜻과 공동체의 규범을 개인의 만족보다 앞세워야 한다고 믿는다. 이 관점에 의하면 우리가 행복을 얻고 세상을 바로 잡는 길은 올바른 도덕성을 갖추는 것뿐이다.
물론 간혹 넘어질 수도 있으나 그럴 떄 우리가 심판받는 기준은 얼마나 비통하고 간절하게 뉘우치느냐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실패한 와중에도 늘 기준에 부합해야 한다.
자아 발견의 길을 대변하는 비유 속의 동생
고대의 가부장적 문화에도 이 길을 택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었으나 오늘날에 훨씬 많다. 이 틀의 주장대로라면 개개인은 관습과 인습을 초월해 자유로이 각자의 목표와 자아실현을 추구해야 한다.
이 관점에 따르면 전통, 편견, 위계적 권위 등 개인의 자유를 가로막는 장벽이 약화되거나 제거될 때 세상은 더 나은 곳이 된다.
이 길을 택하는 사람들은 자기가 어떤 행동을 하던지 자기의 행동을 판단할 수 있는 권리의 주체는 타인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있다고 주장한다.
뿌리 깊게 이 두 가지 접근으로 양분되어 있는 서구 사회
도덕적 순응의 길을 가는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나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지 않고 전통과 공동체가 원하는 대로 살 것이다. "
자아발견의 길을 선택하는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정할 수 있는 사람은 나뿐이다. 나는 내가 살고 싶은 대로 살면서 거기서 나의 참 자아와 행복을 발견할 것이다."
이 두가지 삶의 길은 없다고 생각할 만큼 우리는 어느 한쪽을 비판하거나 거리를 두면 모두들 서로 다른 쪽을 택했다고 단정한다. 온 세상을 두 가지 기본 집단으로 갈라놓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모든 사람이 둘 중 하나의 범주에 속한다고 결론지어야 할까?
도덕적으로 순응하는 사람들은 말한다. "제멋대로 구는 '부도덕한 사람들이 세상의 문제다. 해답은 도덕적인 사람들에게 있다."라고
자아발견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말한다. "'진리가 우리에게 있다'라고 말하는 완고산 사람들이 세상의 문제다. 해답은 진보적인 사람들에게 있다."
양쪽 다 이렇게 말한다. "우리의 길이 곧 세상을 바로 잡는 길이다. 우리와 함께하지 않는 사람은 우리를 반대하는 사람이다."라고.
두 가지 범주에 속하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어느 한쪽의 유형에 끌리기도 하지만 양쪽을 왔다 갔다 하는 사람들도 있다.
삶의 시절과 형편에 따라 행동하는 부류의 사람들도 있다.
삶의 상황에 따라 전략적으로 도덕적 순응의 틀대로 살아보다가 거기에 짓눌려 자아 발견의 삶으로 홱 돌아선 사람들도 많이 있고, 그 반대의 궤적을 그리는 사람들도 있다.
또 한 성격 안에 두 접근이 공생하는 경우도 있다. 어떤 사람들은 겉보기에는 전통적인 형이지만 동생처럼 처신하면서 비밀 생활을 배출구로 유지한다.
경찰이 함정 수사를 벌여 미성년자를 노리는 인터넷상의 성범죄 사범들을 소탕해 보면 매번 아주 종교적인 사람들이 걸려드는 데, 그중에는 성직자들도 많다.
반대로 관점과 생활방식이 아주 분방해 종교를 등진 사람들이 종교적 보수를 상대할 때는 오히려 최악의 바리새인처럼 독선적으로 깔보는 경우도 많다.
예수님은 두 아들의 모습을 통해서 '죄'의 새로운 개념을 설명하신다.
각자 방법은 달랐지만 아버지를 대하는 두 아들은 똑같았다. 하나는 착해 보이고 하나는 못돼 보이지만 아버지를 사랑하지 않는 마음이 같았다.
두 형제의 마음은 아버지의 권위를 못마땅해하며 거기서 벗어나려 했다는 점에서 똑같았다. 둘 다 아버지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위치에 서려했다. 두 아들 모두 반항아였다.
예수님의 관점은 두 아들 중 누구도 아버지를 사랑하지 않았고 둘 다 아버지를 이용해서 이기적인 목표를 이루려고 했을 뿐이었다.
하나님과 멀어지는 길이 두 가지라는 것을 설명하신 것이다. 그분의 규율을 어기는 것으로, 또 하나는 모든 규율을 열심히 지키는 것으로 하나님께 반항하는 하나의 전략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출처<팀 켈러 목사님의 "탕부하나님"에서 >
'감동을 주는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리스도의 지식 있는 사랑 (0) | 2024.01.06 |
---|---|
하나님 자리에 내가 올라서는 것이 '죄'다 (0) | 2023.12.16 |
안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을 재 정의 하시다. (3) | 2023.12.06 |
계산하지 않는 사랑법 (2) | 2023.11.29 |
예수님은 두 아들 가운데 누구의 편이신가? (2) | 2023.11.23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