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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과 성장

사랑스럽게 만드시려고 우리를 사랑하셨다.

by 쏘울프랜드 2023. 10.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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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쁜 튜울립

사랑을 하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 가지 이유로 사랑을 하게 되고 결혼에 골인해서 행복한 인생을 살아가는 것은 평범한 인생의 한 부분이지만 최근에는 결혼을 하지 않으려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고 한다. 

 

사랑은 하지만 결혼생활을 유지해 나갈 수 없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뚜렷이 보이기 때문에 결혼의 행복보다는 결혼의 고통이 더 크게 느껴지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묵상하면 결혼에 대한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팀 켈러 목사님의 저서 "결혼을 말하다"에서 이야기하는 "사랑"을 나누고자 한다. 

사랑은 거래인가? 

고대에는 '신부 대금(bride price)'이라는 것이 있었다. 남자는 신붓감으로 점찍은 여성의 용모와 장차 상속받게 될 재산의 규모에 따라 적절한 수준의 예물을 여자의 아버지에게 바쳤다. 

 

현대인들은 이런 관습에 대해 고릿적 일이라며 "인간이 어떻게 그처럼 끔찍한 짓을!"이란 반응을 보인다. 하지만 민주화가 이뤄진 덕에 남녀가 모두 값을 치른다는 점을 감안하면 예전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다. 

 

요즘 젊은이들은 상대의 값어치를 가늠해 보며 이렇게 말한다. "몸 값이 높은 나이야." "그 친구는 손해 나는 결혼을 했어" "어떻게 그런 놈한테 넘아갈 수가 있지?"

 

이런 즉물적인 평가들은 강혁한 효능을 발휘한다. 오늘날에는 자산의 많고 적음에 비추어 파트너를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사람들은 대개 자신이 투자한 만큼(속으로는 그 이상이면 더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얻을 수 있으면 행복해한다. 

 

세월이 흐르면서 배우자의 결점이 눈에 들어올 때?

시간이 지나도 못마땅한 마음이 가시지 않고 기대했던 것만큼 소득이 나지 않는다는 판단이 서면 장사꾼처럼 처신하기 시작한다. 수입이 깎인 만끔 지출도 줄이는 것이다. 

 

아내가 마땅히 해야 할 바를 다하지 않으면 남편도 제 모습을 찾으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 언뜻 보기에는 완벽하리만치 공평하다. 

 

"마누라가 본분을 다하지 않는데 나 혼자 그럴 필요가 없지. 어차피 되돌려 받지도 못할 바에야 뭐 하러 투자를 하겠어?"거지반 넋이 나간 채로 제 행동이 지극히 공정하고 공평하다고 중얼거린다. 하지만 실상은 일종의 복수일 따름이다. 

 

아내는 남편이 자신과 가족의 필요를 채우는 데 적극적으로 나서 주지 않거나 배우자와 정서적으로 멀어졌다는 것을 알아채면 남편에게 쏟는 관심과 헌신을 거둬들일 명분이 생겼다고 본다. 

 

사랑이 식었다고 생각해서 사랑의 행동을 줄이면 배우자 역시 사랑을 체감하지 못하게 된다. 이런 식의 악순환이 계속되면서 관계는 점점 더 황폐해져 간다. 

 

부부 사이가 부모ㅡ자식 관계와 어떻게 다른가

아이를 키우고 있는 아빠 엄마라면, 성경이 가르치는 형태의 사랑을 실천하고 있을 것이다. 갓난아이는 여태 만나본 모든 인간을 통틀어 가장 연약하고 부족한 존재이다. 

 

핏덩이를 사람으로 키워 내며 긴 세월에 걸쳐 엄청난 희생과 숙고를 하지만 녀석들은 아무것도 돌려주지 않는다. 먼 훗날 사랑과 존경을 돌려줄지는 몰라도 이미 베풀었던 것을 고스란히 되갚는 경우는 단연코 없다. 

 

막대한 인내와 용납, 애정을 쏟아붓지만 아무런 보답도 돌아오지 않는다. 그러나 부모는 자식들이 보상을 해주든 말든 끊임없이 베풀고 베푼다.

 

내 아이가 모든 사람들에게 그다지 호감을 주지 못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부모는 극진한 사랑을 멈추지 않는다. 왜일까? 느낌과 상관없이 성경적 사랑을 온몸으로 실천해 온 까닭에 조건에 상관없이 자녀들을 깊이 사랑하게 된 것이다. 

 

부모자식의 관계는 언약관계, 부부사이는 이익관계

자녀들이 집을 떠나 독립하기가 무섭게 깨져 버리는 가정이 많은 것도 놀랄 일이 아니다. 자식과는 언약관계(사랑의 행동이 깊어지다가 감정이 깊어지는)를 지켜 온 반면

 

부부사이는 받는 사랑이 없으면 감정을 거둬들이는 이익 관계를 유지한 탓이다. 그렇게 2~30년 넘는 세월이 흘렀으니 아들 딸들에 대한 사랑은 여전히 든든하지만 결혼 생활은 공허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적잖은 이들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죄송하지만, 못하겠어요. 그래도 느낌이 있어야 사랑도 하죠. 감정을 속이긴 싫어요. 그런 사랑은 너무 기계적이잖아요." 무슨 뜻인지 알고도 남는다. 

 

하지만 바울은 무작정 행하기만 하라고 다그치지 않고 실천하면서 생각하라고 말한다.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사랑스러워서가 아니라 사랑스럽게 만드시려고 사랑하셨다. 

스스로에게 이렇게 이야기 하라는 뜻이다. "그래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도 타락한 인간들을 보시며 '참으로 매력적이니 나를 내어 주어야겠구나'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잖아. 

 

오히려 고뇌 가운데서 우리가 당신을 부인하고 포기해 버리고 배신하는 모습을 묵묵히 지켜보셨어. 주님은 역사상 가장 위대한 사랑을 행동으로 보이셨어. 

 

십자가에 매달려 있으시면서, 주님은 '아버지, 저 사람들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저사람들은 자기네가 무슨 일을 하는지를 알지 못합니다.'라고 말씀하셨어. 

 

사랑스러워서가 아니라 사랑스럽게 만드시려고 우리를 사랑하신 거야. 배우자를 사랑해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지"

 

당신의 마음에 이렇게 말하면서 결혼식에서 당신이 했던 약속과 맹세를 이행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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