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관련된 단어 가운데 우리에게 익숙한 단어가 하나 있다. 그것은 '편애'(偏愛) 그 의미는 '치우친 사랑'이다. '짝사랑'도 일종의 편애가 아닐까 싶다.
부모와 자식 간에도 '편애'는 존재한다. 아이들이 어릴 때 부모들은 장난 삼아서 물어본다.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아이들의 답변에 따라 엄마 아빠는 좋아하기도 하고 실망하기도 한다.
엄마와 아빠, 형제자매지간에도 편애는 존재하는 것 같다. 그리고 우리가 만나고 있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편애는 존재한다. 스승과 제자지간에 또 다른 인간관계에서는 존재할 수밖에 없다.
'편애'(치우친 사랑) 때문에 생기는 감정의 종류들은
애착(Attachment): 편애는 특정한 대상이나 그룹에 대한 강한 애착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이는 사회적 연결성과 안전감을 강화하며, 특히 어린 아동과 부모 간의 관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우호감(Fondness)과 호혜(Helping): 편애로 형성된 관계에서는 대상에 대한 긍정적인 감정이 강화되어 우호적 행동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이는 서로를 돕고 지원하는 행동으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경쟁감(Competitiveness): 편애로 형성된 관계에서는 대상과의 경쟁이 강화될 수 있습니다. 특히 리더십, 자원에 대한 경쟁 등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질투(Jealousy)와 적대감(Hostility): 편애 대상이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형성하거나 시간을 보낼 때, 이로 인해 질투와 적대감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이는 특히 친밀한 관계에서 두드러질 수 있습니다.
자아정체성 형성(Self-Identity Formation): 편애로 형성된 관계는 개인의 자아정체성 형성에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대상과의 관계를 통해 자신의 가치관과 정체성을 발견하거나 강화할 수 있습니다.
부정적인 감정과 우울감(Negative Emotions and Depressive Feelings): 편애가 일어나는 상황에서 대상과의 관계에 문제가 발생하면 부정적인 감정과 우울감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편애 대상과의 갈등이나 상실은 정서적으로 힘든 경험이 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감정들은 각 개인과 상황에 따라 다르게 나타날 수 있으며, 편애와 관련된 감정은 복잡하게 얽혀 있을 수 있습니다. 관계의 성격, 개인의 성향, 문화적 맥락 등을 고려하여 이러한 감정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람이 사람에게 베푸는 사랑과 관심은 완전하지 못함을 인정해야
기본적으로 인간이 타인에게 주는 사랑은 불완전하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한다. 가령 내가 생각하기에 어떤 사람에게 100만큼의 사랑을 베풀었다고 생각하는데 정작 상대방은 50정도로 밖에 생각하지 않을 수 있다.
이럴 경우에 우리는 실망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내가 베푼게 얼만데 나에게 이럴 수가 있나? 라면서 서운해하거나 심하면 분노하는 마음이 생기기도 한다.
우리가 주는 사랑은 불완전한 사랑, 치우친 사랑, 타산적인 사랑이 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내가 상처받지 않는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랑은 기브 앤 테이크가 아니다.
예수님께서 누가복음에서 잔치의 비유를 통해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또 자기를 청한 자에게 이르시되 네가 점심이나 저녁이나 베풀거든 벗이나 형제나 친척이나 부한 이웃을 청하지 말라 두렵건대 그 사람들이 너를 도로 청하여 네게 갚음이 될까 하노라
잔치를 배풀거든 차라리 가난한 자들과 몸 불편한 자들과 저는 자들과 맹인들을 청하라 그리하면 그들이 갚을 것이 없으므로 네게 복이 되리니 이는 의인들의 부활시에 네가 갚음을 받겠음이라 하시더라"(누가복음 14:12-14)
내가 주는 사랑만큼 되돌려 받지 못했다고 마음이 상했다면 애초에 되 돌려 받으려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상처받고 실망하게 되는 것이다.
황금률은 하나님께서 완성하신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마태복음 7:12)
이 말씀은 '황금률'로 모든 인간관계에 적용할 귀한 말씀이다. 그런데 이 말씀은 위에 있는 누가복음 14:12-14절과의 말씀과 상충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조금 더 묵상을 하면 갚을 능력이 없는 사람에게 사랑을 베풀고 그 사람에게서 보답을 받기를 바라지 말고 그에 상응하는 보답은 하나님께서 완성하신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우리가 구제를 하거나 선교 후원을 하거나 혹은 주변에 어떤 사람에게 호의를 베풀었든지 간에 우리는 그것을 그 사람에게서 되돌려 받을 것으로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전혀다른 방법으로 채워 주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져야만 한다.
하나님의 '치우친 사랑'을 우리는 다른 말로 '은혜'라고 말한다.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받고 있는 사랑은 '거대한 편애'다. '압도적인 편애'가 우리를 살렸다. 그것을 우리는 갚을 길이 없다. 그저 한없는 하나님의 은혜로 감사히 받아들일 뿐이다.
연말연시 누군가에게 베푼 사랑이 부족하다면 채워주시고, 또 내가 되돌려 받은 사랑이 부족하다 느낀다면 사람에게 구하지 말고 하나님께 말씀하세요. 주님께서 위로하시고 채워주실 것입니다.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주리라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누가복음 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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